무더웠던 여름이 언제 가나 했는데 벌써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세월 흐르는 게 참으로 빠르다. 이러다 얼마 안 있어 또 한 살을 먹겠거니 생각한다. 어느덧 한 살 더 먹는 게 무겁게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노쇠에 대해 말했던 작가는 많다. 철학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도 말년에 대해 글을 썼고 필립 로스도 늙는 것에 대한 무력과 슬픔이 배인 에브리맨 이란 소설을 썼다. 철학과 순수 문학에선 어렵지 않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있는데, 장르 소설은 어떨까? 과연 거기에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있을까?이런 의문에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로저 젤라즈니였다.우리에게는 뉴웨이브SF 작가로 많이 알려진 사람.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로저 젤라즈니란, 나이먹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작가다.
아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나이들어 내어놓은 후반기의 작품들이젊은 시절 내어놓은 초창기 작품들 보다 작품성이 많이 떨어져 있기에 가지게 된 느낌인지도 모른다. 그의 데뷔작 내 이름은 콘라드 로 부터 지금 말하려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까지 초창기의 작품들은 그의 비브리오그래피에 있어서 가히 올림푸스 신전과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첫 시작 부터 모든 것을 다 이루어버린 작가였던 셈이다.이런 작가는 사실 불행하다. 궁극을 다시 한 번 넘어서도록 해 주는 행운은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이제 그에게남은 것은 내리막길 밖에는 없는 것이다.(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평가라는 것을 알아두시길...)
추락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런 경험이다.
그것도 특히 정상에 한 번 올라 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면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느낌에 더하여 한 번 올라섰던 그 자리에 대한 미련과 다시는 거기로 가지 못함에 대한 절망이 가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나 전보다 떨어져만 보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욱 비관하게 된다. 천재였다가 둔재가 되어버린 아이가 예전엔 쉽게 풀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풀리지 않는 문제로 끙끙거리듯이 턱없이 낮아져버린자신의 능력치에 대해서 한탄하고 스스로를 구박해댄다.그러면서도 이상하다. 예전의 그와 별다르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아니 오히려 아는 것도 경험도 더 많아졌는데 어쩌자고 그 때의 영감과 기지가 더이상 자신에게 샘솟지 않는 것일까 하고. 그래서 그가 찾아낸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셈이 된다. 바로 나이가 들어서 그런거라고.
육체도 정신도 예전 같지 않음은 일상에서 늘 느끼기 마련인 감각이다. 하지만 창작자에게 그것도 이미 전성기를 맛보아버린 작가에게 그것은 더 예민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처럼 자신도 모르게 작품에 지금 느끼고 있는 지난 세월에 대한 상실감이 투영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번째의 작품 그 얼굴의 문,그 입의 등잔 이 하필이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를 차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그가 데뷔작 내 이름은 콘라드 이후로 내내 불멸 의 존재를 그리고 있음으로도 증명된다. 그는 다른SF작가들과 달리 유독 그리스 신이나 인도 힌두교 신 같은 존재를 자주 형상화하는데 그럴 때 그가 주요 부여하는 특성이 바로 불멸 이다. 그가 이토록 불멸 에 유난히 집착하는 까닭이 어쩌면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간접 증거는 아닐까?
따라서, 이토록 예민한 시간에 대한 감각을 가진 소유자라면 어쩌면 현재 정상과 점점 멀어지는 자신에게 있어 (오직 그것만이 이유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노화 에 대한 강박은 당연히 자리잡게될 것도 같다. 한 번 정상에 있어 본 사람은 늘 그 정상에 있기를 소망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확장되어 그렇게 시간이 결빙된 듯 모든 것이 늘 변하지 않게 되기를 꿈꾸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는 작품으로 불멸 을 추구한다.그렇게 늘 자신을 변함없이 유지시켜 줄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신이 되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이름은 콘라드 에서 그는 아예 신성(神性)을 뒤집어 쓰고 신이 된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허구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법. 현실 속에선 그 누구든 시간에서 비켜 서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때문에 그가 아무리 상상력을 빌어 의욕적으로 신이라는 허구의 가면을 쓰고자 해도 결국은 벗겨지게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꿈도 결국은 깨기 마련이고 남는 것은 미련으로 입맛을 다시는 씁쓸함 뿐인 것을. (그는 2010년, 58세의 나이로 그 자신이 원했던 영원한 불멸의 몸이 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그는 느꼈을 것이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머리와 몸 곳곳에서 호소하는 능력 부족의 아우성을. 그리고 그 아우성이무수한 파동으로 다가와 점점 자신이 쓰고 있는 허구의 가면을 조금씩 허물어 뜨리고 있음을. 그리고 그 가면의 떨어져나간부분 안으로 자신의 주름살이라든지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이 드러나고 있음을...
그렇게 젤라즈니에게 있어자신의 소망과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 하루점차 사멸해 가는 스스로를, 작품으로 추구했던 불멸 처럼 그렇게 늘 변하지 않는 스스로를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꿈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진정 고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가 바로 그러한 내면의 고통 가운데 나온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영국 양장본 초판(1969)의 커버(꽤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그렇게 내가 이 작품집에서 보게 되는 것은 나이들어가는 가운데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씁쓸함과 씁쓸하지만 그대로 내치지 아니하고 자신의 본래적 모습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젤라즈니의 모습이다. 그러니까내게 다가온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라는 작품집은 젤라즈니 자신의 이제 자신은 더이상 신이 아니고 인간 이라는 고백이다.
그건 처음에 나오는작품 12월의 열쇠 에서 바로 느껴진다. 그 작품은 수세기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가인간을 연상시키는 유한한 존재에 대해 가지게 된 연민을 이야기 하고 있다.아마도 내 생각이지만 거기 신과도 같은 존재인 주인공 쟈리 다크 는분명 젤라즈니의 분신일 것이다. 그런 쟈리 다크 가 인간에 대해 연민을 가진다는 것은 그래서 젤라즈니 자신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말하자면 12월의 열쇠 는 젤라즈니가 이제 인간 이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그 받아들임을 작품집 처음에 내세움으로써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 유한성을 받아들인 가운데(이 말은 추락과 사멸을 자신의 본래적 부분의 하나로 인정하는 고백이기도 하다.) 더 이상 신이라는 완전성으로 부터 뒷받침되지 않은, 그렇게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고유의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종의 신과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앞서도 말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두번째의 작품 그 얼굴의 문,그 입의 등잔 이 대표적인데 그 작품은 무엇보다인간에게 남겨진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뒤에 나오는 이 죽음의 산에서 와 비슷한 이야기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두 작품 모두 인간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거대한 존재( 그 얼굴의 문... 에서는 잡을 수 없는 레비안투스 물고기나 이 죽음의 산.. 에서의 그레이 시스터 라는 산이)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그 거대한 존재를 정복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로 만드려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젤라즈니 자신이 그 전까지 작품에서 추구했던 신성 을 획득함으로써 스스로 신격화 되는 것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가운데 젤라즈니는 그것을 살짝 비튼다. 주인공들의 그 거대한 존재로의 추구는 그대로 스스로에 대한 구원의 행위인데젤라즈니의 결말에 가서 그 방향을 살짝 바꾸어 그 모든 행위들인 거대한 존재를 획득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존재를 추구하기 전의 본래적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은밀히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전작에서 스스로 해왔던 모든 작업들을 그 자신 부정하는 것인데 거기엔 아마도 그 노화에 대한 강박 을 가졌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끝에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신 이라는 너무 외부의 것을 잡으려 애쓰다 보니 정말 신경써야 했던 자신의 내부와 그 내부와 연결된 소중한 타인들의 삶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이다. 그 때문에 두 단편 모두에서 젤라즈니는 헤어져버린 옛 연인을 등장시키고 그 거대한 산에 잠자고 있는 것이 한 여자에 대한 애잔한 사랑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젤라즈니는 그 고통의 여정 가운데 스스로 찾은 해답을 슬며시 제시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네 내부와 네 곁의 사람들에게 있으니 이제 헛되이 신을 찾아 그것이 되려 애쓰지 말라고... 그렇게 지금 너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시간속에 사멸해 감을 당당히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그 얼굴의 문... 에서 그동안 신을 꿈꾸다 놓쳐버렸던예전의 연인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표제작 전도서에 바쳐진 장미 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역시 신과 인간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인간이 가진 한계를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거기에 비추어보면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하다. 솔로몬이 적었다고 전해지는 전도서 는 무엇보다 인간의 모든행위들이 헛되다고 말하는 책이다.그 책에 가장 처음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는 전도서 전체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 그렇게 솔로몬은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산물에 대한 부정을 통하여 신만이 오로지 유일한 의미이자 구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전도서 란 한마디로 이제는 젤라즈니가 포기한 신성 으로 인도하는 손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장미 를 바친다. 이건 경배의 행위일까?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장미란 무엇보다 사랑의 상징이고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것을 의미하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미란 전도서와 완전히 상극의 존재이므로 신 으로 인도하는 손길 위에 장미를 바친다는 것은 당신의 인도를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제목 그대로 여기에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 신과 인간이 담겨져 있다.그렇게 신의 의지와 인간의 행위가 맞부딪히는 작품인 것이다.사랑이 인간이 내세우는 무기라면 춤은 신의 언어가 드러나는 몸짓이다. 시인은 언어로서 신을 헤아리려 하고 신은 그 언어로 도리어 시인을 신성으로 이끌려 한다. 그렇게 지구와 화성, 인간과 신, 사랑과 경건이 서로 가면을 달리 쓰면서 신과 인간 사이의 용호상박의 난투를 그리고 있다. 젤라즈니는 물론 그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그 모든 대립 과정을 밝히는 이유가 인간의 삶이란 게 바로 그와 같은 전장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갈등하고 번민하고 추락의 예감과 실감에 시달리고 한 번 쥐었어도 놓칠 수 밖에 없고 또한 그 놓쳤던 것에 아쉬워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인간이 가진 실존에 대한 잠언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젤라즈니 자신의 깨달음이며 또한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안이기도 하다. 그렇게 더이상 노화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그러니까 이제 그는 더이상더 감퇴되는 기억력, 샘솟지 않는 영감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스스로를 구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부족함을 느끼면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과거는 지나간 것,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겠는가! 현재의 나,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을 함께 있는 내 곁의 타인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깥의 신 으로서 날 충만시킬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충만하면 그것이 곧 신이 되는 길이 아니겠는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는 그러한 더 많은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그가 받아들인 것들이 곳곳마다 잠언처럼 깃들어있는 작품이다.그래서 다 읽고나면 어쩐지
가면을 완전히 벗어버린 맨 얼굴로 소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젤라즈니가 보이는 듯도 하다. 현재의 삶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는 말이 어떠한 선언이나 우격다짐 없이마냥 잔잔한 가운데몰래 맞는 가랑비 처럼 흠뻑 젖도록 만든다.
그러니 문득 속절없이 나이먹음에 대해 어딘가 아련하고 애잔한파문이 살며시 일어난다면, 그래서 문득 영화에서 처럼천막 안에서 모닥불을 마주하며 인디언 예언자의 선문답 같은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벗하면 정말 좋을 것이다.인생을 사랑하는 법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법 하나만은 분명 느낄 수 있으므로...
SF에 대한 기존 관념을 재검토하게 한 아메리칸 포스트뉴웨이브의 거장 로저 젤라즈니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신화와 환상, SF를 융합한 지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며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작가 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가, 젤라즈니의 소설집으로 네뷸러상 수상작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을 비롯하여 거장의 화려한 문학적 재능이 집약된 주옥과도 같은 중단편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오리지널 중단편집에는 들어 있지 않은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1979)를 제외하고는 1960년대에 발표된 초기의 주옥같은 중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화 SF의 걸작 「12월의 열쇠」, 화성의 무희와 지구에서 온 서정 시인의 사랑을 릴케의 선율에 담아 노래한 표제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노스탤지어와 존재의 고통에 가득 찬 「폭풍의 이 순간」등의 작품을 통해 젤라즈니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1. 12월의 열쇠
2.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3. 악마차
4.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5. 괴물과 처녀
6. 이 죽음의 산에서
7. 수집열
8. 완만한 대왕들
9. 폭풍의 이 순간
10. 특별 전시품
11. 성스러운 광기
12. 코리다
13. 사랑은 허수
14.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15. 루시퍼
젤라즈니의 영광과 비극
로저 젤라즈니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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