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소재는 정말 단순하게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과 시인들의 차이는 그런 일상적인 것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진리를 찾으려 하는 시선이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집을 읽다가 가끔 정곡을 찌르는 시들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시들의 태반이 우리가 바로 옆에 두고 있던 것들의 이야기이고, 그것을 좀 더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이번에 읽은 김광규 시인의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도 그런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 정말 흔한 대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만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사물과 그 속에서 찾아낸 의미가 정말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저런 사소한 것들에서 어떻게 저렇게 깊이 있는 사유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아서 무척 놀라운 감정으로 오른손이 아픈 날을 읽어 나간 것 같습니다.김광규 시인의 시들을 이번에 읽은 오른손이 아픈 날을 읽기 전부터 이미 접하고 있어서인지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더욱 낯설게 느껴지고 시유의 깊이라는 것에 한층 대단함을 느끼게 했습니다.일상적인 작은 것에서 이끌어 낸 삶에 대한 시선들이 무척 마음 뜨겁게 만들었고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켜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게 했습니다.좋은 시집으로서 가져야 할 대중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이 잘 융합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고 한 권을 읽는 내내 정신없이 시들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오랜만에 정말 집중해서 읽어 나간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이었고 이런 좋은 시집을 이제야 읽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울 정도로 무척 마음에 드는 시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의 마침표를 내다보는 평온한 고백
하루를 일생처럼 살아가는 노년의 기록
2016년 문학과지성사 첫번째 시집으로 시력 40년을 맞이한 김광규의 열한번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 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 으로 등단한 이래, 맑은 눈으로 현실을 관찰하여 성찰하고 명료하게 다듬어내 시에 투영해왔다. 국내외와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를 공감시키는 진리가 담긴 시들로 그간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독일 예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상과 한독협회의 이미륵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011년 여름 종심(從心, 일흔 살)을 맞이한 시인이 2015년 가을까지 4년 동안 바라본 세상과 기억들, 앞서 보낸 동료들에 대한 애도와 담담한 내일 맞이가 담긴 66편의 작품들을 총 4부로 나누어 묶은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일상에서 진리를 추출해내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우러나는 김광규 특유의 관조가 돋보인다.
김광규의 시는 일상성 속에 도사린 삶의 허망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변형 없이 그대로 보여주면서, 평범한 것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드러내고 비범한 진술을 통해 일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교묘한 전위의 구조를 형성한다. 시인은 여유 있는 시선으로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융합된 유기적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조차 두려움 없이 맞이하고 있다._이숭원(문학평론가)
제1부 빗소리
동사목(凍死木)
녹색 두리기둥
나비 두 마리
까만 목도리
딱딱한 정물
설날 내린 눈
난간 없는 계단
떨어진 조약돌
모르지요
바람 바람
빗소리
저물녘 풍경
타우젠트 아일랜즈
새와 함께 보낸 하루
홉스굴 부근
제2부 어리석은 새잡이
가지치기
고금(古今)
난초꽃 향기
가을소녀
내외
누워 있는 부처
돌사자 옆에서
발
세 바퀴 자전거
소리의 무게
수정 고드름
유리약국
홍제내2길
늙지 않는 쇼팽
목불의 눈길
어리석은 새잡이
제3부 그늘 속 침묵
생가 앞에서
고렷적 이야기
개마당
당시의 유행
구부러진 타래송곳
누렁이
건널목 우회전
땅 위의 원 달러
저녁 비행기
불타버린 전망대
석불당 새소리
쪽방 할머니
길 없는 길
메아리
바다의 통곡
온 세상 하얗게
그늘 속 침묵
소쩍새 우는 소리
제4부 어제 넘어진 자리
아무도 모르는 별명
그 손
부끄러운 계산
빛바랜 사진
다가오는 시간
벽강은 마음 속에서
시간의 늪
여기까지
밤낮
쓰지 못한 유서
어제 넘어진 자리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한식행
오른손이 아픈 날
그대 가 있는 곳
지나간 앞날
크낙산 가는 길
해설 | 유기적 공감의 축복 이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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