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근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또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어느 분야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가 정의를 내리고
시점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떤 출발선과 같아서 모든 게 변하는 그런 시점은 또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서 근대의 시점을 얘기하는 것은 그나마 쉽다고 생각한다. 근대 과학혁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그 과학혁명의 성격에 대해서
대체로 공유하고 있으며, 그 과학혁명의 주역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과학혁명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도 알고 있다. 그로부터 근대를 얘기하면 될 터이다. 그 사람은 바로 아이삭 뉴턴!
에드워드 돌닉의 『뉴턴의 시계』은 대체로 그 뉴턴에 대한 책이다. 그냥
‘뉴턴에 관한 책’이라 하지 않고, ‘대체로’라고 한 것은 이 책이 뉴턴에 대해서 쓴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뉴턴을 정점으로 한 과학혁명에 관해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학혁명은 분명히 뉴턴이 정점이긴 했지만, 뉴턴 혼자서 이룩한 것도 아니었다. 뉴턴의 업적은 자신이 로버트 훅을 비아냥거린 표현이든 자신의 겸손함을 나타낸 표현이든 ‘거인의 어깨’가 필요했다.
우선 그 시대, 즉 17세기가
어떤 시대인지를 얘기해야 한다. 그 시대는 묘한 시대였다. 흔히
흑사병이라고 하는 페스트로 런던을 비롯한 영국과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시대였고, 대화재로 역시
런던을 집어삼킨 시대였다. 사람들은 페스트가 세균 때문이 생긴 병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대화재 역시 신의 노여움이라 여겼다. 아직 근대가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자연을 탐구했고, 기구를 제작했다. 이른바 과학이 시작되었다. 직업적 과학자는 몇 세기 후에야 등장했고, 과학자라는 말도 역시 한참 후에야 등장했지만, 과학자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그 때 등장했다. 그들은 왕립학회(Royal Society)를
만들어(1660년)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져 자신들이 알아낸
것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이제 근대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기의 과학자들은 ‘두 시대에 함께 걸터앉은 사람들’(p. 82)이었다. 중세와 근대가 공존했고, 신의 시대와 과학의 시대를 동시에 살아갔다. 그럼에도 그 두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그게 모순된다고도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 혁신적이라고 생각했으며,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직접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신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신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방도라고 여겼다. 비록 그
방법은 비아냥의 대상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를 그렇게만 이해하면 되었지, 그것을 증명하고 원리를 이해하기 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적지 않은 당대의 학자들이 17세기 과학자들, 왕립학회 회원들을 비꼬았다. 새로움의 추구는 불편하게 여겨졌고, 나아가 인위적인 조건과 기구를
통해 세계를 조작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위험스러웠다. 과학이 처음 생기던 시절이다.
뉴턴이 있기 전에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있었다.
케플러라는 천재는 튀코로부터 받은 막대한 관측 자료를 해석했다. 수십
년 동안. 끈질김과 통찰력은 완벽함의 상징이었던 원을 부정할 수 있었고, 속도의 균일성을 부정할 수 있었다: “케플러 이전에는 무엇이 행성을
움직이게 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케플러 이후에야 천체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은 별과 행성이 단지 도표상의
점들이 아니라 실제의 물리적 대상으로서 어떤 우주적 엔진에 의해 밀리고 당겨진다고 여기게 되었다.” (p.
199)
갈릴레이라는 천재는 세부를 무시해버리는 과감한 도약을 시도했다. 실제의
세계를 버리고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세계를 보았다. 역설적이게도 자세하지 않음이라는 큰 통찰을 통해
누구든, 어디서든, 언제든 통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해냈다. 갈릴레이는 모든 경험과 모든 상식을 무시하고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든 얼룩과 흠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런 산만한 것들 너머에 깃든 깊은 진리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p. 245)
그리고 뉴턴이 있다.
그는 무한이라는 괴물을 이겨내 미적분(calculus)를 창안해 냈다(라이프니츠도 독립적으로 발견했으며,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격렬하게 다투었다). 미적분은 세계가 도약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세계를 다 해석할 수 있는 막강한 도구였다(도약하는 세계를 해석하는 길은 양자역학이 열었다. 다만 우리가 보는 세계는 거의 도약하지 않는다). 그 괴팍한 천재
중의 천재는 자신이 창안한 미적분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도 전모를 발표하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며,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세계의 비밀, 즉 신의 비밀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이라 여겼다. 다만
친한 몇 사람에게만 넌지시 알려주기만 했다. 그러다 등에 떠밀리듯 『프린키피아』를 썼다. 미적분이라는 막강한 방법을 이용한다면 더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기하학이라는
옛 방법을 써서 증명해낸다. 그러니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뉴턴이 발견한 법칙을 통해서 후대의 과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신의 자리를 조금씩 밀어냈다. 뉴턴이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자신은 당연히 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여겼으며, 신의 만들어내고 보살피는 세계의 법칙을 알아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뉴턴은 수학적 성전의 한가운데에 눈부신 새로운 건축물이 아니라 고대의 낡은 비의적 힘을 모신 사당을 지어놓았던
것이다”, p. 365). 과학을 훌쩍 뛰어넘는 발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창조라는 위업에 더 큰 경의를 표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를 가졌던
뉴턴의 업적은 정반대로 해석되었다. 바로 그게 과학혁명이었다. 그리고
근대가 탄생했다.
에드워드 돌닉은 뉴턴을 정점으로 한 17세기의 시대와 과학의 풍경을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로 재미있게 그려놓았다. 과학에 관한 책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소설이자 역사책 같고, 그냥 흥미로운 책 같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학의 본질, 과학혁명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진지한 책이다.
“이런 규칙들은 1600년대 내내 지속되었지만, 왕립학회가 규칙을 깨기 시작했다. 은유, 직유 그리고 오랫동안 존중받아온 다른 모든 형식적인 표현들은
산만하고 부수적인 장식일 뿐 진리 탐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는 없애야 할 것들이었다!” (p. 101)
과학은 어쨌든 무엇인가를 깨야만 하는 것이다.
우주는 시계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법칙을 따라 작동한다.
이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기계처럼 작동하는 세상과 근대 세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신앙과 지성 사이에서, 모순과 호기심 사이에서 투쟁하던 왕립학회 천재들의 위대한 탐구!
과학혁명은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었는가
탁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17세기 과학혁명 이야기
1600년, 지구가 무수히 많은 행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죄로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을 당했다. 이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705년에 영국 여왕은 아이작 뉴턴에게 만인의 존경을 받는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뉴턴의 업적은 조르다노 브루노의 생명을 앗아간 그 가르침을 온 세상 사람에게 설득시킨 것이었다. 브루노가 화형당한 암흑의 시대와 뉴턴이 이끌었던 ‘기적의 시기’ 어디쯤에서 세계는 근대를 맞이했고, 이후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뉴턴이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과의 낙하는 달을 포함한 천체의 운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현상이었다. 사과는 그저 떨어졌고 달과 별은 거기에서 운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계는 ‘과학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시기를 맞이한다.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자연철학에 머물렀던 과학이 근대 과학의 성향을 뚜렷이 지닌 방법론과 목표를 도입한 것이다. 왕립학회가 실험을 강조한 것은 매우 놀랍고도 혁신적인 일이었다. 뉴턴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그토록 달라질 수 있었을까? 뉴턴뿐 아니라 과학혁명을 이끌었던 시대의 사람들, 즉 ‘왕립학회의 고뇌하는 천재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순간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에드거상 수상자인 저자 에드워드 돌닉은 흥미로운 주제와 살아 있는 문장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과학혁명의 태동과 그 후폭풍이 세상을 뒤흔들던 시대를 소설처럼 영화처럼 풀어내는 동시에 과학혁명의 주요 사상을 그림 자료와 함께 쉽고 상세하게 풀어내 뉴턴의 시계 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처럼 자유롭고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를, 리처드 홈스의 경이의 시대 처럼 과학이 진화해온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한 권에 담아내고 있다. 과학을 좋아하는 독자는 과학혁명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로, 과학을 잘 모르거나 심지어 과학에 두려움이 있는 독자는 한 편의 소설처럼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연표
서문
제1부 혼돈
1. 런던, 1660년
2. 사탄의 발톱
3. 세상의 종말
4. 흑사병이 미친 듯이 골목골목을 휩쓸었을 때
5. 암울한 거리
6. 화재
7. 제도판에 앉아 있는 신
8. 근대 세계의 문을 연 열쇠
9. 유클리드와 유니콘
10. 소년들의 모임
11. 바리케이드를 향해!
12. 개와 악당들
13. 독약 한 방울
14. 조롱꾼들의 비웃음
15. 관객 없는 연극
16. 산산조각이 나다
제2부 희망과 괴물
17.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
18. 양처럼 큰 파리
19. 지렁이에서 천사까지
20. 끔찍한 것들의 행진
21. 아름다움 앞에서 전율하다.
22. 관념으로 만든 패턴
23. 신이 만든 아리송한 암호
24. 비밀 계획
25. 기쁨의 눈물
26. 황금 코가 달린 바다코끼리
27. 우주의 금고를 깨부수다
28. 까마귀 둥지에서 본 풍경
29. 1687년의 스푸트니크호
30. 평범한 장면 속에 깃든 비밀
31. 두 개의 돌과 밧줄 한 가닥
32. 벽에 붙은 파리 한 마리
33. 유클리드만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았네.
34. 여기에 괴물이 있다!
35. 짐승을 막을 울타리를 치다
36. 소용돌이를 벗어나
제3부 빛 속으로
37.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38. 기적의 시기
39. 모든 불가사의가 사라진 세계
40. 말하는 개와 뜻밖의 능력
41. 근접 촬영으로 본 세계
42. 변화율의 변화율
43. 가장 꼴사나운 다툼
44. 싸움의 끝
45. 사과와 달
46. 케임브리지 방문
47. 뉴턴의 압승
48. 훅 씨와의 알력
49. 세계의 체계
50. 오직 세 사람
51. 정말로 터무니없는 이론
52. 신을 찾아서
53. 글을 맺으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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