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천재적인 재능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최근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산문집『피아노를 듣는 시간』과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었다. 산문은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고, 소설은 음악의존재와 의미에대해 말하는 듯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두 권 모두 어려웠다. 그럼에도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는 건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클래식과 익숙하게 지냈다면 『마이너리티 클래식』에서 만난 마흔아홉의 예술가 중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 점이 바로 특별한 이유다.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왔음에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은 왜 그들을 잊었을까? 저자 이영진의 설명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었음을 짐작해본다.
책은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현악기 연주자로 나누어 마흔아홉 명의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다. 각각의 생애를 돌아보고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준 음악가를 짚어준다.말러를 사랑한 독일 출신의 지휘자 오스카 프리트, 오직 바흐와 모차르트 만을 향했던 지휘자 카를 리슈텐파르트, 베토벤은 자신의 태양이라고 말한 피아니스트 리히터 하저, 그들에겐 음악이 아닌 다른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흔아홉 명의 음악가는 저마다 힘겨운 삶을 살았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를 둔 알란 페테르손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네 차례 낙방 끝에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을 공부한다. 하지만 작곡만 전념하라는 순간 류머티스 관절염에 걸리고 만다. 음악이 전부였던 그에게 생은 정말 가혹하다.
“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음악의 질료는 바로 축복하고 저주받았던 나 자신의 인생입니다. 나의 영혼이 한때 불렀던 노래를 돌이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107쪽 (작곡가, 알란 페테르손 중에서)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연주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거나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애국과 이념 때문을 지키기 위해 예술을 나래를 접어야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외에도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그리스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유학한 미트로풀로스가 그렇다. 자신의 콘서트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아 찾아와 제자가 된 번스타인은 미트로폴로스에 대한 거짓 추문으로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는 독실한 신앙 때문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해임되어야 했다.
음악이 있어야만 음악가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명예와 인기는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삶,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나는 내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연주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연주하는 것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422쪽 (바이올리니스트, 앨버트 스폴딩 중에서)
클래식은 여전히 멀다. 저자는 그것이 안타까웠을 것이다.세상이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거장을 향한 저자의무한 애정이전해지는 책이다.그들의 음악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흔아홉 명의 작품을 음반을 추천하고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대중 속으로 스며들도록 말이다. 몸으로 기억한 음악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음악이란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KBS 라디오 책 읽는 밤 8월의 책 선정〉
클래식의 거장들이 ‘천재’라 일컬은 49인의 특별한 음악가
그들의 치열한 삶과 빛나는 음악을 듣다
클래식 음악사의 숨은 거장 ‘마이너리티’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토벤의 투쟁, 차이콥스키의 연민, 말러와 쇼스타코비치의 해학 등등 굵직굵직하게 음악사를 장식한 ‘메이저리티’ 사이에서, 또는 그들과 함께 클래식사를 써내려가며 음악을 빛내고 있었다. 이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은둔하기도 했지만, 부당하게 고통 받고 외면받기도 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기도 했다.
하지만 굴절 많은 인생을 품고 삭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킨 그들이 일궈낸 예술은 영원하다. 그들의 심신을 갉으며 태어난 그 선율들은 남다른 고통이자 열정이고, 안도와 치유이며, 그래서 영혼을 뒤흔든다. ‘마이너리티’의 길을 걸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수호자가 아닐까. 이 책은 단순한 레코드 컬렉터의 취향에 따른 선별이 아니며, 단편적인 음반 소개도, 절판된 음반에 대한 추억담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연주되거나 무대에 올라오는 일이 드문 낯선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마이너리티 클래식 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음악가들의 삶으로 빚은 음악의 풍성함을 선사하며, 한 곡 한 곡 애정 가득한 해설을 곁들여 새로운 클래식 리스트를 선보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집필한 음악평론가인 저자 이영진은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지금, 여기에서 ‘마이너리티’를 다시 무대에 세운다.
마이너리티 클래식 보러가기
책머리에 _ 고통의 삶에서 진실한 음악을 품은 이들에 바치는 헌사
추천의 말 _ 진정한 예술의 수호자들 손열음(피아니스트)
1부 작곡가
요하임 라프 Joachim Raff
곤궁을 딛고 삶과 항쟁한 소리의 풍경화가
한스 로트 Hans Rott
절망과 광기에 스러진 젊은 예술혼
스콧 조플린ㆍ윌리엄 그랜트 스틸
Scott JoplinㆍWilliam Grant Still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 부르는 평등의 노래
프란츠 슈미트 Franz Schmidt
대환란의 시대를 예언한 독일 낭만파 음악의 계승자
루에드 랑고르 Rued Langgaard
초인을 꿈꾸며 사회와 친화하지 못한 아웃사이더
카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 Karl Amadeus Hartmann
불의의 시대를 오롯하게 항거한 비타협의 예술정신
알란 페테르손 Allan Pettersson
황야를 맨발로 걸으며 나 소리쳐 절규하나니
2부 지휘자
오스카 프리트 Oskar Fried
파란의 삶을 개척의 정신으로 관통한 자유의지의 보헤미안
폴 파레ㆍ마뉴엘 로장탈
Paul ParayㆍManuel Rosenthal
강하고 온유한 자는 늙어도 결코 쇠하지 않나니
유진 구센스 Eugene Goossens
마녀사냥의 제단에 희생물로 바쳐진 지휘대의 신사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Dimitri Mitropoulos
소명의 정신으로 모반의 불길에 산화한 음악의 수도사
카를 리슈텐파르트 Karl Ristenpart
선술집 홀에서 피어난 음악의 향연
카렐 안체를 Karel An?erl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음악의 순교자
게오르그 틴트너 Georg Tintner
무소유의 정신으로 세계를 유랑한 음악의 디오게네스
헤르베르트 케겔 Herbert Kegel
치열하게 살다 고독하게 무너진 비극의 로맨티스트
카를로스 파이타 Carlos Paita
모험심의 창검과 금은보화의 방패를 든 포디엄의 돈키호테
엥리케 바티즈 캠벨ㆍ에두아르도 마타
Enrique Baiz CampbellㆍEduardo Mata
태양빛처럼 뜨겁고 데킬라처럼 자극적인 라틴 음악의 바통
3부 피아니스트
마르셀 메이에르 Marcelle Meyer
시대를 예찬하고 과거를 경배한 유리알 유희의 뮤즈
마리아 유디나 Maria Yudina
천상의 권위에 헌신하고 지상의 권력에 반역한 음악의 잔 다르크
콘라드 한젠ㆍ한스 리히터 하저
Conrad HansenㆍHans Richter-Haaser
영육이 강건한 자, 그들의 음악은 반석처럼 의젓하도다
어빈 니레지하지 Ervin Nyiregyhai
기적의 손가락과 집시의 영혼을 가진 건반의 탕아
루돌프 피르쿠슈니 Rudolf Firku?y
나의 사랑 나의 조국, 나의 영혼 나의 음악이여
아나톨리 베데르니코프ㆍ마리아 그린베르크
Anatoly VedernikovㆍMaria Grinberg
수난과 고통의 골짜기를 넘어 모든 것을 얻었노라
윌리엄 카펠ㆍ디노 치아니
William KapellㆍDino Ciani
그들의 인생은 짧고 그들의 예술은 영원하다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Alexis Weissenberg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 나를 숭배하거나 나를 혐오하라
발레리 아파나시예프 Valery Afanassiev
우울과 몽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르네상스적 예술가
유리 예고로프 Youri Egorov
어디서나 이방인이었던 건반 위의 서정시인
4부 현악 연주가
앨버트 스폴딩ㆍ루이스 카우프먼
Albert SpaldingㆍLouis Kaufman
음악은 식지 않는 내 평생 사랑이노니
엔리코 마이나르디ㆍ안토니오 야니그로
Enrico MainardiㆍAntonio Janigro
언제나 사려 깊은 마음과 봉사하는 정신으로
윌리엄 프림로즈 William Primrose
어둠의 장막을 걷고 광명을 개척한 굳센 의지
시몬 골드베르크 Szymon Goldberg
외유내강의 영혼으로 정진한 음악의 작은 거인
이온 보이쿠ㆍ롤라 보베스코
Ion VoicuㆍLola Bobesco
청중과 하나 되어 노래하는 유혹적인 음악의 미소
헤르만 크레버스ㆍ티보르 데 마휼라
Herman KrebbersㆍTibor de Machula
우리는 음악으로 우정의 밀어를 나누었나니
다닐 샤프란 Daniil Shafran
첼로는 그의 전부이고 살아 있는 영혼이며 진실한 친구였으니
요한나 마르치 Johanna Martzy
아주 작은 차이로 희생당한 고결한 음악혼
반다 빌코미르스카ㆍ콘스탄티 안제이 쿨카
Wanda WiłkomirskaㆍKonstanty Andrzej Kulka
내 어디를 간다 한들 순백과 진홍의 깃발을 잊으리오
크리스티앙 페라스 Christian Ferras
창공을 드높이 비상하다 추락한 바이올린의 이카로스
마이클 래빈 Michael Rabin
자아에 짓눌려 노래를 잃은 비극의 오르페우스
음악가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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