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쇄 발행 2013년 4월 10일
부제: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이진아 기념도서관
한형우 건축가: 고인을 위해 6월에 꽃이 피는 둥글레를 심음.
개관식날 : 한 아주머니(세진 엄마)가 쪽지와 시디(1년여 동안 찍은 사진84장) 한 장 건넴
붉은 벽돌: 서대문형무소가 역사관이 되어 독립공원으로 조성될 때
교도소 건물 일부 철거 때 나온 벽돌 버려질 뻔 했으나
시민단체의 이의 제기로 퍼골라, 벽돌 벤치 등으로 재 사용 됨.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건축만큼 아름다운 건축은 없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한옥+로마네스크=기와 지붕
증축: 김원 건축가(원 설계도찾게 되어 원안으로 증축)
어떻게 하면 건축과 친해질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그냥 찾아가서 어슬렁거리면 된다.
건축이 다른 예술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장르인 이유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감상이 된다는 점.
서울은 온갖 종교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보물상자다.
국내 주요 종교의 모든 보누가 서울에 있다.
천주교에는 명동성당이 있고, 불교에는 조계사가 있고, 천도교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근사한 천도교중앙대교당이 있다.
개신교에는 따로 본부가 없지만 정동교회와 경동교회와 같은 사랑스러운 건물들이 여럿이다.
고딕: 딱딱하고 뽀족한 교회
로마네스크: 뽀족하지 않은 교회
성당은 빛의 예술 을 추구하는 건물이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스테인드글라스 다.
성당 안에서 또 한 곳 반드시 들러볼 곳이 있다.
성당 지하에 있는 지하성당 이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꿈마루의 부활은 ~ 새로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라되살리는 건축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월이 쌓이면 어떤 건물이든 가치를 갖게 된다.
공간을 완성시키는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곧 건물과 관계 맺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이 스며든 공간을 지우고 헐기에 바빴다.
(2010년 봄, 건물을 새로 지으려다 당시 최광빈 서울시 국장이 건축가 조성룡에게 도면을 봐 달라고 요청하면서 고 나상진의 작품임이 밝혀짐.)
1세대 1950~1970년대까지 한국 건축을 대표했던 건축가 고 나상진(1923-1973)의 작품이었다.
2세대 1960-80년대 김수근, 김중업
3세대 1990년대 이후
나상진: 건축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음에도 능력 하나로 자수성가했던 토종 건축가였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부인 순명황후 능->일제 강점기 때 경성골프장->어린이대공원
골프장 클럽하우스 전용 건물->교양관 건물->나상진 작품
기적의 도서관(어린이 전용 도서관-건물 전체가 온돌 난방) : 위대한 나비효과
1997년 시애틀의 한 도서관 직원이 아이디어 ->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탄생 -> 시카고 책읽기 운동
-> 쌀집 아저씨 김영희 피디 [느낌표-책을 읽읍시다] ->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전남 순천~) 고 정기용
아이들의 신체 크기와 취향에 맞는 다양한 독서공간을 집어넣은 것도 처음이었다.
고 정기용
우리나라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거.[ 경축 재건축 , 안전진단 통과 ]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던 곳을 때려 부수고 증축하는 곳은 대한민국뿐입니다.
정기용은 평생 옳은 것은 지켜야 한다 는 철학을 고집했던 건축가였다.
암에 걸려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1년을 기록한 영화 [말하는 건축가; 감독 정재은] 2012년 개봉
예순다섯 2011년 3월 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건축이란 원래 겉모습의 완성도만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분야다.
건축 조건이 어떠했는지가 건물의 모양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과 예산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추구했는가가 정기용 건축의 관전 포인트다.
곧 어떤 디자인을 시도했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담으려 했느냐를 봐야 한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 건축가 장영철, 전숙희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에요"
일제 강점기 시절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할머니들의 수요시위
한두 분씩 세상을 뜨기 시작하면서 2003년께 박물관의 필요성 제기
2004년 박물관 건립위원회 꾸려짐
정부와 국회 지원 자금 부족으로 관계자들은 기업들을 찾아갔지만 어느 기업도 동참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런 마케팅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거절.
<강한 언어로 정확한 표현을 해야 맞겠지만 그럴경우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 걱정이 된다.
박물관에 우리나라 무수히 많은 기업 중 어느 하나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에 또한 놀랍다.
마케팅 효과가 없어서라. 회사 이미지라.
독립공원에 들어서려던 것을 애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반대를 한다는 것은 국내에서도 일제 강점기 교육을 받아온 엘리트 집단들과 그들을 흉내내는 자들 그리고 그 덕에 편히 살아가는 후손들의 뿌리 깊은 교육의 효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애국선열들이 살아 있었다면 외세에 당한 자국민을 내쳤겠나 싶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받아들였지만,화냥년이라는 과격한 표현처럼 국민들의 무지로 그들을 내쳤다면, 지금은 어떠한 건가. 명예훼손이라.
과연 진정한 애국선열들이라면 오히려 더 애통해 하지 않았을까.
나라의 힘없음에. 지켜주지 못했음에. 그리고 자국에서 또 한 번 내쳐지는 상황에.
과연 명예훼손을 운운했던 자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궁금해진다.>
도동서원
서원은 문을 누각으로 짓는 것이 특징이다.
수월루 -> 환주문(주인을 부르는 문 : 내 심성의 주가 되는 근본을 찾아 부른다는 뜻.
즉, 내 마음의 주인을 만나라는 것.)
동서남북 배치의 방향이 일반 서원과 완전 정 반대다.
강의실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고, 동재는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 있고, 서재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있다.
이 서원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원 자체가 소우주의 중심이 되고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서원에 맞춰 재해석한 것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 덴마크 건축가 이외른 우촌(오렌지 껍질에서 얻은 아이디어)
<지붕표면 독특>
실제 건축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중요한 건물들을 보면 건축가에겐 대표작이 되었어도 건축주에겐 최악의 선택이 된 것들이 드물지 않다.
건축주 이상으로 건축가가 분노했던 점도 조금은 달랐다.
더욱 독특했던 것은 사공이 많았는데도 배가 산으로 가지 않고 정확하게 목표한 곳으로 가서 걸작 건축물이 된 특별한 경우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건물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이야기다.
1973년 완공.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건물은 정면이 따로 없고, 구조에도 구분이 없었다.
하얗게 포개지는 거대한 고깔 모양은 그 자체로 벽이자 지붕이자 창문이 된다.
1997년 완공 20주년 기념식을 열며 오스트레일리아 쪽에서 우촌을 기념식에 초청 -> 우촌 거절
2000년대 초반, 팔순 노인이 된 우촌은 (설계 도중 사임한지 30년 뒤) 리노베이션하는 개축 공사에 참여
우촌은 개축 작업에 참여했지만 다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돌아가 이 건물을 보지 않겠다고 했던 선언은 끝까지 지켰다. 2008년, 긑내 이 건물을 보지 않고 눈을 감았다.
옛 부여박물관 : 건축가 김수근
선배 건축가 김중업의 비판(일본의 신사를 닮은 건축이라는)
김수근->[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등의 책을 쓴 혜곡 최순우 선생을 스승 삼아 전통문화 공부.
특히 우리 옛 건축의 대명사로 꼽히는 부석사는 일곱 번이나 찾아갔을 정도였다.
<건축가의 말처럼 미국이나 프랑스 건물의 모티브이던 일본의 모티브이던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라는 나라마다 역사가 있고 기쁨이나 슬픔이 다 다르듯이 그 부분을 간과하면 오히려 예쁘기만 한 그저그런 의미없는 조형물에 불과할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래서 비판없이 지나갔다면 오히려 슬펐을 것 같다.
그런면에서 선배 건축가의 강한 비판이 그의 살아있는 정신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을 것이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것 같다.
건축가도 대단한 것이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 공부를 하고 알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멋진 건물을 만들 수 있었나 보다.
비판할 수 있고 그 비판속에 무너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정신력!
그 강인함을 본받고 싶어진다.>
봉하마을 묘역 : 건축가 승효상
2009년 5월 23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자살->유언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고향에 내려가 살았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이는 고 정기용 교수(1945-2011)였다.
국립현충원이 아닌 곳에 묻히게 된 첫 대통령의 묘역이었고, 그래서 대한민국 국가보존묘지 1호가 되는 묘역이었다.
건축가는 ~ 노무현이란 독특하고 특별한 인물의 무덤은 스스로를 추방한 지식인의 무덤이어야 한다고.
스웨덴의 우드랜드 공동묘지, 간디의 묘를 떠올림.
간디의 묘 라즈 가트 는 간디의 주검이 묻힌 곳이 아니라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너락바위에 대통령 노무현
바위를 받치는 강판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
시기리야 요새 : 스리랑카 고대유적
외세의 침입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올라가 요새가 된 마사다와 달리 카샤파 왕은 스스로 시기리야 요새를 짓고 그 위에 올라가 숨었다.
장남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이었지만, 동생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왕족이었다.
불안에 빠져 살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직접 왕위에 오른다.
세력을 모아 쳐들어온 동생을 물리치기 위해 요새를 뒤쳐나와 전투에 나섰다가 자결한다.
카샤파가 죽은 뒤 시기리야 요새는 다시 수도승들의 은신처로 되돌아 갔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어쩌면... 모든 학문의 기본이 인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이 요새는 올라가는 길이좀...무서울 것 같아서...실제로 보러 갈 용기는 안 날 것 같다.>
프루이트 아이고와 세운상가
프루이트 아이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
가난한 이들의 펜트하우스 로 불리며 대단한 화제였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지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공주택 ~ 유지 관리에는 거의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세운상가: 김현옥 시장은 재임 시절 서울의 여러 산꼭대기에 시민아파트를 한꺼번에 무려 400여 채나 지었는데, 평지를 놔두고 불편한 고지대에 아파트를 지은 이유는 박정희 대통령이 쉽게 볼 수 있는 자리에 지어야 자신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그의 측근들은 증언한 바 있다.
결국 마포에 지은 와우아파트가 짓자마자 붕괴되는 최악의 사고가 벌어졌고, ~ 이 불도저 시장이 시민아파트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 추진했던 사업이 세운상가를 짓는 재개발이었다.
아그라포트 : 인도 마지막 왕조 무굴제국
창덕궁 정자
창덕궁은 한마디로 마하면 한국 정자의 종합 전시장 같은 궁궐이다.
부용정: 창덕궁에서 가장 화사한 정자
관람정: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붕 모양이 부채꼴인 정자
승재정: 툇마루, 창호를 달고 문살과 난간이 세밀하고 정교한 정자
임금님이 타고 다니는 가마인 연을 떠올리게 한다.
존덕정: 2겹 지붕, 지붕 목구조 드러나는 천장
소요정:건물+바위+샘물(초미니 폭포)有 정자
청의정: 초가지붕 정자인 모정 이란 정자로 농업국가 상징.
정자 앞 논에심은 벼를 수확하면 그 짚으로지붕 엮음.
태극정: 높이 쌓은 돌기단有정자
애련정: 연꽃을 사랑하는 정자라는 뜻의 정자
폄우사, 능허정, 상량정...많은 정자들이 있다.
<이렇게 많은 정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와~ 이쁘다 이랬구나 하면서 천천히 보다가 정말 보기만 하고 왔었는데, 이 책 덕분에 우리의 정자의 매력에 푸욱 빠져 버렸다^^
햇살 좋은날을 잡아서 창덕궁 나들이를 가야 할 것 같다^^ㅎㅇ>
선교장: 300칸에 이르는 강릉 최고 부잣집(한옥 건축사전이라 할 만하다)
조선시대 집 크기 규정은 엄격했다.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집은 60칸.
면적과 칸수 제한에서 99칸이란 숫자는 나오지 않는다.(심리적인 한계 표현으로 추정)
보통 양반집들은 ~당 이나 ~각 등의 이름을 붙인다.
선교장은 장원 이기 때문에 이름에 장 자가 붙었다.
장원은 ~ 한 집이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경제적 시스템을 갖춘것을 말한다.
한때 선교장 집안의 땅은 북쪽으로는 주문진까지, 남쪽으로는 울진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선교장을 대표한 이들은 남성이었지만 이 집안을 세우고 유지한 실제 주인공들은 여성이었다.
일단 선교장 집안을 세운 이가 여성이었다.
선교장의 줄행랑은 하인들의 거처가 아니라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열화당(차양有): 뜻 맞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
충재(3칸 집, 부엌+방+마루)+ 청암정(거북 바위 위에 자리잡은 정자) : 경북 봉화 닭실마을
안동권씨 권벌(1478-1548)고택
충재 ~ 이후 도산서당 등으로 이어지는 양용삼간 건축의 맏형 격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 풍수를 연구한 일본 학자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의풍수]란 책에서
경주 양동마을, 풍산하회마을, 임하 내앞마을, 그리고 이 닭실마을을 삼남(충청, 전라,경상도 세 지역) 4대 길지로 꼽았다.
* ~집이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로 시작하는 책이다.
제목이 너무나 예술이었고, 표지도 상당히 예쁘다.
상단의 노랑이 단순해 보이지 않게 사진을 부분으로 보여주고 하단에 벽돌 사진으로 운치를 더했다.
책의 시작을 이진아 기념도서관으로 했는데 그 의미도 의미지만 매일 같은 자리에서 찍은 시민의 관심과 노력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건축가도 건축주도 행복했을 것 같다.
두번째 장을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으로 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을 너무도 쉽게 설명해주며 어려워하지 말고 종교건물의 내부를 들어가서 보라고 얘기해준다.
솔직히 종교인이 아닌 이상 건물은 아름답지만 그 안까지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안을 보라고 권해준다.
한 번 용기내서 안을 들어가 보려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그래도 건축을 보는 작가의 시선이 맘에 든다^^
건축을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시각도 이야기가 담겨서 아름다운 것도.
건물에 어슬렁거리며 건축과 친해지라는 조언도.
아직은 나를 위한 건물을 보고 있지만, 조금 더 시선이 넓어지면 나를 넘은 건물을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보게 된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지 못하고 밤을 세버렸지만, 건물도 내용도 맘에 들어서 다시 부분부분 펼쳐 읽게 되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예쁘기만 한 건물로 생각되었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다시 보였다.
정말 그 마력에 푸욱 빠져 버렸다^^
특히 건축가의 행보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지 않았을까.
얼마나...아니, 어떤 심정이었길래 정말로 뱉은 말을 지키며 죽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단 한 번도 안 볼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예쁜 건물을.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
집을 좋아해 건축 전문 기자가 된 저자 구본준은 여러 매체와 블로그를 통해 건축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해왔고, ‘땅콩집’을 짓고 살며 집 짓는 이야기를 엮어낸 두 남자의 집짓기 라는 책으로 ‘땅콩집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은 건축에 대한 저자의 오랜 애정이 녹아든 책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건축들이 품고 있는 마음속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
건축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릇이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이 담긴 건축에는 인간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미학적으로 우수한 건축만이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알면 건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건축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인생 그 자체이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연도 있다. 오욕칠정이 스며든 건축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극장과도 같다.
이진아기념도서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봉하마을 묘역, 창덕궁 정자 등에서 저자는 이야기를 통해 건물의 희노애락을 읽어낸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건축물들의 뒷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독자들도 건축에서 인생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희喜
이진아기념도서관
기쁨으로 승화된 슬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아름다운 도서관
- 이진아기념도서관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 바로 벽돌 벤치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고난을 이겨낸 기쁨,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종교건축
- 외국 종교가 한국과 건축으로 만나는 방법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되살아난 부활의 기쁨, 잊혀지고 사라졌다 돌아온 건물
기적의 도서관
위대한 나비효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기적의 건축물을 만들다
- 정기용이 세운 또 하나의 기록
로怒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끝나지 않은 분노의 건축,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집
도동서원
오기로 지은 독종의 건축, 죽음의 의미를 묻는 조선 건축의 스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분노와 저주의 건축, 건축주와 건축가를 원수로 만든 집
옛 부여박물관
대중의 분노, 건축가의 치욕, 한국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건물
애哀
봉하마을 묘역
아무도 예상 못한 죽음이 만들어낸 새로운 건축
시기리야 요새
건축으로도 결코 막지 못한 운명, 하늘에 떠 있는 비운의 성
프루이트 아이고와 세운상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아파트, 세인트루이스와 서울에서 벌어진 비극
아그라포트
미친 아버지, 그 아버지를 응징한 아들, 슬픔의 성
락樂
창덕궁 정자
왕의 정자, 정자의 왕을 만나다
선교장
조선 최고 부자가 일군 즐거운 소통의 집, 전통백과사전 같은 저택
충재
세상에서 가장 작아 가장 커진 집
문훈발전소
점집과 정자로 꾸민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사무실
- 사무실 운영 방식을 ‘헌법’으로 명시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카테고리 없음